필자는 5살부터 33살이 되기까지 한 동네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삼십년 가까이 살았던 그 정감 있던 골목길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살던 동네가 아파트단지로 조성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무렵 주변의 집값은 몇 배로 올랐고 그 때에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하고 살던 주민들은 서둘러 집을 팔고 이사를 가기에 바빴다. 우리가족이 살던 빌라만해도 곳곳에 빈 집이 늘어나고 밤이 되면 썰렁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기를 몇 해, 본격적으로 기존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고 건물을 허물기 시작하면서 뉴-타운으로 변화의 공사가 시작됐다.
늘 다니던 시장의 골목길이 사라지고 공사를 위한 펜스가 세워졌고 여기저기 건물들의 리모델링까지 진행되며 동네는 점점 예전의 모습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파트단지가 거의 완성될 무렵 내가 살던 집(으로 짐작되는) 장소를 지나가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찾아갔다. 그러나 예상대로 이미 건물은 사라졌고 삼십여 해를 드나들던 길도 사라져있었다.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그 곳에서 내 어린 시절의 추억들과 돌아가실 때 까지 함께 살았던 할머니의 자취, 결혼을 하고 떠날 때의 그 집, 내 첫 아이가 기어 다니던 외갓집은 이제 거기에 없었다.
그 대신 이제는 세련되고 깨끗하고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그곳에 세워졌다. 오랫동안 그 곳에 살던 지역주민의 다수는 다른 지역으로 떠났지만 가끔 아직 살고계신 주민들을 만나면 남의 동네가 된 것처럼 어색하다고도 하시고 또 옛날이 그립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아파트가 동일 면적 대비 많은 가구 수를 제공하고 현대 사회에 더 어울리는 모습은 사실이겠지만 옛 기억의 골목들이 사라져가는 것은 여러모로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반면에 ‘골목길 재생사업’으로 옛 골목을 유지하면서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으로 변화하는 지역도 있다. 서울 성동구의 용답동 골목길이 그 중 하나다.
서울시는 뉴-타운과 같은 대단지조성사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역사와 지역의 정체성이 담긴 서울의 골목길을 보전하고 낙후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골목길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성동구 용답동은 고층아파트단지보다 저층 다가구주택이 밀집된 오래된 동네다. 성동구는 이 지역을 아파트단지로 재개발하는 대신 시 지원비를 받아서 일부 골목의 구간과 인근 13개 주택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소방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골목길의 폭을 넓히고 주변 주택의 대문과 담을 낮추며 건물 외벽도 정비했다. 또한 골목 여기저기에 벤치와 화단, 놀이터 등을 조성해 깨끗하고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울퉁불퉁하던 오래된 길바닥이 밝은 색의 보도블럭으로 환하고 편평해지고 녹슨 철제대문은 통일된 색의 문으로 바뀌었다. 특히 골목길의 취약점인 쓰레기가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청결약속지점’이라 표시하고 자그마한 화단으로 꾸며 더욱 청결한 골목이 되도록 했다.
한편으로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추억을 가지고 살고 계신 지역주민들이 부러웠다. 개발과 추억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자체의 결정이 다행스럽다 생각되기도 했다.
허물고 다시 짓는 개발과 기존의 것을 유지·개발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현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일까. 유행과 ‘집값’에 따라 결정되는 개발이 아닌 이제는 사람과 어울려 공존할 수 있는 ‘개발’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