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족들과 바람도 쐴 겸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온 적이 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한가롭게 다니던 중 양평 어디쯤 갔을까 처음 보는 문구의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치매안심마을’. 왜 그런지 모르게 글귀를 보자마자 마음에서 ‘아’ 하는 짧은 탄식이 새어져 나왔다. 하지만 치매안심마을이 어떤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저 궁금함이 더 클 뿐이었다.
그렇다.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면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고통 받는 환자 본인과 그의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몇 해 전 필자의 할머니도 경미한 뇌출혈로 인해 발병한 치매로 병상에서 몇 년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치매 환자가 있는 가족의 고통은 글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우리 가족도 할머니의 치매 발병 후 한 두해는 집에서 모시면서 간병을 했다. 치매 환자를 집에서 간병하기란 온 식구가 총동원돼야 하며 누군가는 반드시 집에 환자와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다 가족의 사회생활 유지가 더 이상 불가능해 질 무렵 결국 요양원에 할머니를 모셨고 그 곳에서 다시 몇 년을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시게 됐다.
이처럼 사회의 고령화로 인한 치매환자의 증가와 환자를 포함한 가족의 고통을 인지한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라는 공약을 내놓고 치매 환자를 국가차원에서 돌보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지침에 따라 지역사회들은 ‘치매안심마을’을 운영해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치매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치매안심마을’은 서울의 자치구에도 마련돼 있지만 그 보다 수도권 지자체에서 좀 더 폭넓게 운영되고 있다.
‘치매안심마을’은 지역 주민이 치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치매 환자와 가족에 대한 보호를 위해 물리적 환경을 조성한다. 간호사, 직업치료사 등의 전문 인력을 투입해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우선적인 치매 선별검사를 제공하고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한 실질적으로 치매 환자가 집을 나와 길을 잃었을 경우에 대비해 여러 상가들이 보호구역으로 설정돼 치매 환자의 실종이 일어나지 않도록 돕는다. 특히 치매·고령 대상자의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해 가스자동잠금장치 보급과 가스시설 개선 사업이 함께 진행되는 등 각 지자체 별로 마련한 정책들이 다양하게 운영된다.
치매는 가장 슬픈 병이라고 한다. 기억을 잃고 가족을 몰라보게 되고 결국 내가 누구인지도 잊게 되는 병이 치매다. 치매에 걸린 환자와 가족을 안타깝게만 생각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이런 자치정책이 있어 잔잔한 감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굉장히 불편하고 내가 사는 지역이 ‘늙고 병든’ 마을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이 세금의 지출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감기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치매도 누구에게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우리 가족이나 나 또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매로 인한 고통이 이제는 ‘너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 여기고 그들에게 그 병이 더 이상 슬프기만 한 일이 되지 않도록 돕는 것, 그것이 같은 사회의 일원인 우리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몫일지도 모르겠다.